층간소음(1/2)
"너도 어릴 때 그랬어."
작년 3월 초부터 층간소음에 시달린 지도 어느덧 5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답답한 마음에 부모님께 하소연을 해봤다. 어린 날의 업보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이날까지 참아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기억에 우리는 저녁 8시부터 잘 준비를 하여 9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잠에 들었다. 그리고 가끔씩 아랫집에서 올라올 때면 부모님께서는 아랫집 어르신께 정중히 사과하셨고 나에게도 심부름을 통해 반복적으로 인사를 시키셨다.
윗집의 네 살, 일곱 살 아이들은 큰소리로 싸울 뿐만 아니라 매일 밤 새벽 2-3시까지 뛰어다녔고, 이는 곧 부모의 호통 소리와 쿵쾅거리는 발소리로 이어졌다. 아무리 아이를 통제하기 어렵다 하여도 새벽 2-3시는 너무했다. 특히, 어른의 묵직한 발자국 소리는 고체의 매질인 벽을 타고 나의 고막까지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집에서는 책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보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몇 주 뒤, 날이 점점 서늘해지면서 창문을 닫고 지내다 보니 층간소음이 더욱 선명하게 전달되었고, 우리는 참다못해 손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대중 매체에서 층간소음 대처법으로 편지를 추천하기도 했고, 우리 또한 층간소음과 관련된 흉흉한 소식을 접한 터라 직접 마주하기는 다소 걱정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낸 편지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 22시 이후에는 아이가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지도해주세요.
- 아이의 소음과 더불어, 어른의 소음도 많이 힘듭니다.
이튿날 저녁.
우리는 편지 말미에 편하신 시간에 연락해달라며 연락처를 덧붙였는데, 이에 대한 답장으로 층간소음 법적 규정이 첨부된 글을 받았다. 본인들은 법적 규정을 잘 지키고 있으며, 슬리퍼도 잘 신고 있다며 슬리퍼 사진도 올렸다.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사용감이 전혀 없는 슬리퍼였기에 상당히 열이 받았다. 당장 윗집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 또한 어린 시절에는 층간소음 가해자였다는 사실에 조금 더 참기로 했다.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당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기에 어린 시절 아랫집 어르신께 다시금 사죄드리고 싶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편지를 주고받은 뒤부터 새벽 2-3시까지 시끄러운 일은 줄었다는 점이다.
이전만큼 늦은 시각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주에 5일은 밤 11시 30분마다 전쟁이 벌어졌고(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로 유추해보면 씻기 싫다고 악을 쓰는 것 같았다.) 밤 11시면 잠에 들던 나로서는 여전히 힘들었다.
다시 몇 번의 주말이 지난 어느 날, 반년 넘게 시달려서 상당히 예민해진 나는 기어코 관리사무소에 연락하여 삼자대면을 요구했다. 정말이지 몇 번이고 이사를 가고 싶었지만, 대출 때문에 그러지 못했고 남은 계약 기간 동안 계속 시달릴 생각에 앞이 깜깜해졌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에서는 윗집에 일정을 물어본다고 하였고, 며칠 뒤 윗집의 요구에 따라 평일 점심에 모였다.
반듯한 눈매에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가 계단을 내려와 지하에 있는 관리사무실로 들어왔다. 멀쩡한 첫인상에 대화가 잘 이루어질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 아마 편지도 육아에 지쳐서 본심으로 쓴 게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대화를 하러 나온 것만으로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겠지.
관리사무소장님이 서로를 소개하였고, 나는 미리 준비한 내용으로 운을 띄웠다.
"제가 3월 초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반년 동안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밤 10시 이후에는 조용해주실 수 있나요?"
덧붙여 공간을 구분해달라고 제안하면서 안방은 잠을 자는 곳이니 특히 더 조용해주시고 아이들이 지내는 방은 우리도 최대한 이해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대략 수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윗집 남자가 입을 뗐다.
"10시 반, 적어도 11시에는 재워볼게요. 애들 안 키워봐서 잘 모를 거예요."
흥정이라니. 도무지 대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빈말이라도 죄송하다며 아이에게 주의를 주겠다는 뉘앙스만 비추었어도 좌절감이 덜했을 텐데... 나는 남자의 말을 듣고 이 사태가 길어질 것을 예상했다. 아이도 키워본 적 없으면서 무얼 아냐는 말을 내뱉은 상대를 보며 한동안은 또 이렇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골이 아팠다.
육아가 고됐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지 추가적인 대화를 거부하며 윗집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겨진 나에게 관리소장님은 층간소음 분쟁조정위원회를 추천해주셨고, 나는 조금만 더 지켜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