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4일차
커튼 사이로 든 햇살에 눈을 떴지만 비가 내렸기에 침대에 등을 붙인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 누워있기로 하곤 핸드폰도 하고 곤히 자는 아내의 얼굴도 바라보며 시간에 잠시 기댔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등이 배겨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마침 비가 그치면서 젖은 땅에서 피어오른 상쾌한 기운이 방을 채웠다. 창문 밖으로 나무에 걸린 연이 보인다. 며칠 전, 한 가족이 연을 날리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연이 여즉 남아있는 것으로, 그들은 오래도록 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점심을 먹기 전부터 점심을 먹고 돌아온 이후까지 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결국 마음을 접고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날이 갠 김에 산책을 결심하였고, 잠시 틈을 내어 청소기를 돌리다 창문 밖으로 한 아이가 연을 빼내려 던진 나뭇가지에 시선을 뺐겼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지난번 연을 날리던 아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있는 힘껏 나무도 흔들어 보면서 연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쉽지 않았는지 이내 포기하고는 동네 정자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에 친구가 더 있었다면 힘을 모아 연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 곧 마스크를 벗으면 친구를 더욱 편히 사귈 수 있겠지.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바람이 몹시도 강해서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산책에서 돌아와 일기 예보를 보고서야 양양에 강풍 주의보가 내렸음을 알았다). 시원한 바람에 파도소리와 소금기와 모래가 날아왔지만 마스크를 낀 덕분에 입으로 모래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주말을 맞아 양양 서피 비치에는 자그맣게 벼룩시장이 열렸고 한쪽에서 연을 팔고 있었다. 금액이 다소 비쌌지만 바람이 딱 좋아 양 모양의 연을 샀다. 작년부터 수차례 연날리기를 시도했으나 연거푸 실패였기에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다.

바람이 하도 세서 하늘을 나는 갈매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비행하였다. 갈매기는 이내 방향을 등지고 바람부는대로 날아갔는데 그 모습으로부터 연을 내리지 못한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네 삶도 이와 비슷하지만, 곁에 가족과 친구가 있고 자연은 늘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동네 빵집에서 저녁으로 먹을 소시지빵과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스무 개 사고는, 행복한 주말을 흥얼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의 영화는 디즈니 플러스에 있는 <소울>로, 멋진 주제와 음악이 곁들여진 명작이었다. 이 작품만으로도 디즈니 플러스는 제 몫을 톡톡히 하였고, 매일의 일상을 사는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