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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도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5일차

by 가별 20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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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다. 어젯밤 조금 일찍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혹은 마지막 주말이라 아쉬웠기 때문일까. 아마도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선명한 그믐달을 바라보며 해돋이를 기다렸다. 기상 일보를 찾아보니 일출까지 3분가량 남았는데 수평선 너머로 점점 색이 변했다. 곧 해가 뜨겠지. 동네 어르신께선 진즉 일어나셔서 마을 정자에 앉아 가볍게 몸을 움직이셨고, 거리에는 가끔 한두 대의 차량이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잠시 후, 예보보다 일 분 먼저 해가 모습을 비추었다. 붉은 만두 반죽이 주위를 착실하게 파스텔톤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얼마만인지 속으로 셈을 하였는데, 생각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납작했던 구체가 이내 수평선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림같이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창밖의 연은 아직도 제자리에서 너풀거렸고, 정자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께선 이미 자리를 뜨셨는지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나자 태양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여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하늘은 이토록 멋진 풍경을 매일 연출하였을 텐데, 노을보다 자주 접하지 못해 더욱 인상 깊이 다가왔다. 시간이 흘러 공터는 어르신으로 가득 찼고, 세워진 운동 기구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아침을 깨웠다. 모든 게 그렇지만, 그토록 시선을 사로잡던 해돋이도 곧 시들해졌다. 허나,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즐겁다. 여행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오늘처럼 잔잔하게 밖을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을까.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적지는 강원도 고성군의 화진포. 낯익은 이름의 별장들에 적힌 낯선 생애를 보면서 스스로의 삶을 한층 소중하게 돌아보았다. 근처에 있던 생태 박물관도 나름 볼만하여 천천히 둘러보고는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위해 차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수년 전부터 줄기차게 시도하였으나 아직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연을 날리기 위해 바람이 잘 부는 지형을 물색했다. 직접 만들어도 보고 방패연부터 가오리연까지 각종 연으로 여러 날씨에 날려보았지만 어린 시절 대충 만들어 날렸던 것만큼 제대로 날지 못했는데, 비로소 오늘은 성공을 예견했다. 텅 빈 백사장은 바람만이 가득했고, 마침 뒤에는 방풍림이 있어 지형적으로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나름 치킨 한 마리어치의 돈을 들여 구입한 연이라 그 기대가 컸다.

바닷물이 무척 맑았다.

바람에 연이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다 잠시 구름이 태양을 가렸을 때 세찬 바람과 함께 높이 떠올랐다. 실감개에서 줄이 빠르게 풀리는 바람에 손끝에 작게 화상을 입었지만 기분이 끝내주었다. 바람과 악수를 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흔히 낚시꾼들이 말하는 손맛을 즐기며 멋진 오후를 보냈다.


연 날리기를 성공하여 한껏 들뜬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설악산 산장으로 돈까스를 먹으러 갔다. 두꺼운 고기만큼이나 풍부한 맛이다. 배까지 부르니 더할 나위가 없어 숙소로 돌아와 한 숨 청한 뒤, 저녁에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를 보았다. 후회없는 마지막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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