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19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9일차 어젯밤엔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배가 너무 부르기도 했고, 집에 간다는 아쉬움과 알기 힘든 설렘이 뒤섞여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쉬움이야 당연하지만 이 설렘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잊고 지낸 감정을 떠올렸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들기 전, 종종 다녀온 장기 여행의 막바지에 느꼈던 기분으로, 집에 대한 그리움과 여행에서의 만족감이 교차하는 상태이다. 비록 날씨가 좋지 못한 날이 많았고 여행이라기보단 장소를 바꾼 재택근무였지만, 이번 여정도 충분히 좋았다. 무엇보다 돌아가는 길이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함께라 더욱 풍요롭다. 지난번 서점에서 꿈꾸었던 여행하는 노년의 삶 또한 돌아갈 곳이 있음에 아름다울 수 있을 테다. 어제부터 이어진 비로 바다와 이어지는 하천이 제법 불었다. 당분간은 마.. 2022. 4. 26.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8일차 이른 아침, 덜컹이는 모터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의 예보에 따르면 비가 내릴 텐데 트랙터 소리가 났고, 이어서 들리는 자동차 바퀴 소리도 먼지 속 소음처럼 흐릿하게 퍼졌다. 하늘은 흐렸기에 반신반의하며 창밖을 보니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저 멀리 뜬 권적운으로 보아 조만간 비를 뿌릴 기세였다. 오늘의 예보는 밤부터 강수량이 찍히는 것으로 바뀌었기에 퇴근 후 다시 연을 날리기로 계획했다. 아침 식사로 어젯밤 산책에서 돌아오며 구입한 13세기빵과 마늘연유빵을 먹다가 문득 13세기에도 이런 빵을 먹었을지 궁금해졌다. 빵의 유래를 찾아보니 모닝빵 열세 개를 붙여서 만들었기에 13세기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이런 이름이 통용되는 게 신기하다. 한편, 마늘연유빵은 정확히 한국인을 겨냥하여 만든 .. 2022. 4. 25.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7일차 오늘도 일찍 눈이 떠졌다. 봄이 온 것이 분명하다. 거실에 나가니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해돋이를 기다리며 기상 예보를 찾았다. 예상 일출시간은 며칠 전보다 조금 더 당겨져 있었고, 당연하게도 서쪽보다 강원도의 일출이 수 분 정도 빨랐다. 오래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지만 직접 체감하니 신비롭다. 퇴근 후 무얼 할지 고민하다 어제 즉흥적으로 반차를 사용하였으므로 오늘은 평소보다도 일찍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했다. 창으로 드는 볕이 따스했던 탓인지, 업무가 밀려들어서인지 조금 더워서 일하는 도중에 창을 열었다. 일하는 내내 부드러운 바람이 블라인드를 흔들며 평화로운 소음을 만들었다. 점심 식사 후 햇볕이 가장 뜨거울 때 우리는 냉동고를 열어 미리 사다 둔 아이스크림을 꺼내며 계절을 이야기했다. 구구콘과 누가바.. 2022. 4. 24.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6일차 날이 맑아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반차를 쓴 뒤 낙산사로 갔다. 여행 막바지에도 아직 채우지 못한 목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찰은 채우기보단 비우기 위해 가는 곳이지만, 담지 않을 거라면 비우는 의미가덜할 것이다. 돌담을 따라 한동안 조용히 걷다가 출출해져 입구 쪽에 위치한 찻집에서 을 샀다. 비우는 것과 채우는 것의 편안한 균형을 즐기고 있었는데 시야 안으로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들어왔다. 찻집에서 키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들은 햇빛을 따라 처마 밑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생각보다 몸집이 컸다. 기분 좋은 눈 맞춤을 끝으로 우리는 절을 나왔다. 다음 목적지는 속초 해수욕장 옆에 새로 개장한 대관람차 다. 평일이라 사람이 적은 공간을 놀이기구에 대한 설렘이 바람을 .. 2022. 4. 23.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5일차 모처럼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다. 어젯밤 조금 일찍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혹은 마지막 주말이라 아쉬웠기 때문일까. 아마도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선명한 그믐달을 바라보며 해돋이를 기다렸다. 기상 일보를 찾아보니 일출까지 3분가량 남았는데 수평선 너머로 점점 색이 변했다. 곧 해가 뜨겠지. 동네 어르신께선 진즉 일어나셔서 마을 정자에 앉아 가볍게 몸을 움직이셨고, 거리에는 가끔 한두 대의 차량이 부지런히 목적지로 향했다. 잠시 후, 예보보다 일 분 먼저 해가 모습을 비추었다. 붉은 만두 반죽이 주위를 착실하게 파스텔톤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얼마만인지 속으로 셈을 하였는데, 생각의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납작했던 구체가 이내 수평선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림같이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2022. 4. 22.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4일차 커튼 사이로 든 햇살에 눈을 떴지만 비가 내렸기에 침대에 등을 붙인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만 누워있기로 하곤 핸드폰도 하고 곤히 자는 아내의 얼굴도 바라보며 시간에 잠시 기댔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등이 배겨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마침 비가 그치면서 젖은 땅에서 피어오른 상쾌한 기운이 방을 채웠다. 창문 밖으로 나무에 걸린 연이 보인다. 며칠 전, 한 가족이 연을 날리다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연이 여즉 남아있는 것으로, 그들은 오래도록 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점심을 먹기 전부터 점심을 먹고 돌아온 이후까지 나무 아래를 서성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지만 결국 마음을 접고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날이 갠 김에 산책을 결심하였고, 잠시 틈을 내어 청소기를.. 2022. 4. 20.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3일차 어제 먹은 닭강정이 아른거려 퇴근 후 바로 시내로 향했다. 지난번에 구입한 자동차 책이 다소 실망스러웠기에 그 옆에 진열되어 있던 책을 사고자 먼저 서점에 들렀다. 자동차 책을 사지 않았다면 돈을 아낄 수 있었겠지만 이전부터 갖고 싶던 책을 구입한 덕분에 포장 비닐 속 궁금했던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사지 않았다면 그저 상상만으로 남겨두어야 했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언제나 모든 경험이 보람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모든 경험이 소중한 이유는 배려와 공감을 더욱 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잠시 다른 코너에서 책을 구경하는 동안 나도 여행책을 살폈다. 세상에는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많고, 만약 원하는 노후를 살 수 있다면 정기적으로 여행 잡지를 구독하다가 끌리는 곳을 발견하였을 때 지체 없.. 2022. 4. 19.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2일차 미세먼지로 하늘이 부였기에 계획하였던 낙산사를 포기하고 숙소에 남았다. 며칠 뒤면 여행도 끝이라 생각하니 하염없이 아쉬웠으나 어젯밤 남긴 최고의 닭강정이 점심 메뉴라는 사실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퇴근 후 도치알탕을 먹은 뒤, 아내와 해변을 따라 걷다 도로 옆 카페에서 카페모카 한 잔을 나누어 마셨다. 아내와의 산책이 좋다. 오늘도 잠에 들기 전, 글을 적는다. 글쓰기의 재미를 몰랐을 때엔 이처럼 여행에서 글 쓰는 데 시간 쏟는 것을 아깝게 여겼지만, 마치 재미있는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보는 것처럼 여행에서의 나날을 두고두고 추억하는 즐거움을 맛보았기에 이제는 기록을 멈추기 힘들다. 또한 시골에서는 여전히 밤에 할 일도 그다지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절반 이상이 흐리거나 비가 내렸음에도 여행지에 왔다는 .. 2022. 4. 18. 강원도 양양 보름살이 - 11일차 아침에 눈을 뜨니 허리와 목이 아팠다. 날이 흐려서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숙소에서 일할 때 앉는 의자가 고정형이고 딱딱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이맘때 즈음에 증상이 비슷하여 한동안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증상도 완화되고 무엇보다 금액이 부담되어 그만두었다. 그 뒤로는 나름 홈트레이닝도 하면서 열심히 하였지만, 이번 겨울 동안 코로나와 날씨로 인해 운동을 소홀히 했던 게 원인이 되어 다시금 통증이 도졌나 보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여야겠다. 지난 주말에는 디즈니 플러스로 샹치와 뮬란을 보았는데 둘 모두 아쉬움이 컸다. 샹치는 단지 양조위가 출연한다는 이유에서 골랐으나 그 외에는 딱히 흥미로운 부분이 적었다. 마동석이 나온 이터널스에 이어 마블 영.. 2022. 4. 15.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