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블라인드를 올려서 날씨를 대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밝은 정도로부터 계절을 유추하고, 아스팔트의 색을 보며 강수량을 짐작하는데 오늘은 비가 왔다. 일기예보를 살피니 주말 내내 하늘에서 비를 뿌릴 심산이다. 식사를 마친 뒤, 물을 끓이며 집에서 챙겨 온 티백을 나열하고는 잠시 고민을 했다. 날이 맑았다면 별 고민 없이 아침엔 페퍼민트, 점심이라면 라벤더, 저녁엔 캐모마일을 택하겠으나, 비가 오는 날에 마시는 녹차나 메밀차 혹은 둥굴레차를 놓고 왔기 때문이다. 계절별로 즐기는 생강차, 유자차, 모과차 혹은 청귤차도 없고,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대추차라든지 장모님께서 주신 자몽차도 없다. 잠시 고민하다 출근 시간이 다가와 어제 아침에도 마신 페퍼민트로 정했다.
출근 후 업무 계획을 세우는데 밖에서 동네 아이들이 등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씨에 상관없이 즐거웠던 때를 떠올리다 아홉 시가 되어 청약홈 애플리케이션을 열었다.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굳어진 또 하나의 루틴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여행에서 머무르는 숙소 모두 우리 부부의 것이 아니기에 언제나 기회를 살피고 있다. 오늘도 변변한 청약 물건이 없어 자본주의가 야속하다가도, 사회주의 국가들이 오늘날까지도 답습하는 잘못을 보면서 획기적인 대안이 쉽지 않음을 떠올렸다. 이번에 바뀐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을 어떻게 다룰지 귀추를 주목해야겠다.
퇴근 후, 아내의 제안으로 노래방에 가고자 시내로 나섰다. 속초 먹거리 마을에 위치한 노래방 근처에 노상 주차를 하고 저녁 식사를 할 식당을 둘러보았다. 어젯밤 조금 추웠다는 아내를 생각하여 여러 후보 가운데 삼계탕으로 택했다. <녹각 삼계탕>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단을 하나 올라 의자에 앉은 뒤에 삼계탕을 두 그릇 주문하니 사장님께서는 서비스로 인삼주를 권하셨다. 맞은편 벽장에 직접 담그신 듯한 인삼주가 눈에 들어와 술을 마시지 않는 나로서도 군침이 돌았으나 운전을 해야 했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메뉴를 고를 때부터 삼계탕과 닭도리탕, 둘 뿐이었기에 왠지 믿음이 갔는데 인삼주라니,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았다. 잠시 후 간결한 밑반찬이 나올 때, 김치는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자그마한 단지에 나왔다. 모든 것이 흡족한 식당이다.
펄펄 끓는 삼계탕 속에는 엄지 손가락만큼 두꺼운 인삼이 큼지막하게 들어있었는데 13,000원의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고 넘치는 맛이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제대로 소화를 시킨 후에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는 샤워를 마친 뒤에는 욕조 및 화장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오는 것이 예절이라고 가르치셨지만, 당시에는 이를 언제나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머릿속에 담아두기가 버거워 지키지 않았다. 한동안 이를 마음속 짐으로 여기다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자 부모님께서는 물끌개를 주시면서 샤워 후 샤워실 내벽 유리를 닦고 나오도록 종용하셨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아내로부터 샤워를 한 뒤에 욕조를 청소하라는 강도높은(..?) 권유를 받아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키는 중이다.
매일같이 청약홈에 접속하여 매물을 살피는 것과 더불어 하루에 두 번 샤워를 마친 뒤 뒷정리를 하는 것. 이처럼 어른이 될수록 일상에서 늘 짊어진 사고가 늘어나기에 그토록 어린 시절을 애틋하게 추억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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