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허리와 목이 아팠다. 날이 흐려서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숙소에서 일할 때 앉는 의자가 고정형이고 딱딱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이맘때 즈음에 증상이 비슷하여 한동안 필라테스를 다녔는데, 증상도 완화되고 무엇보다 금액이 부담되어 그만두었다. 그 뒤로는 나름 홈트레이닝도 하면서 열심히 하였지만, 이번 겨울 동안 코로나와 날씨로 인해 운동을 소홀히 했던 게 원인이 되어 다시금 통증이 도졌나 보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여야겠다.
지난 주말에는 디즈니 플러스로 샹치와 뮬란을 보았는데 둘 모두 아쉬움이 컸다. 샹치는 단지 양조위가 출연한다는 이유에서 골랐으나 그 외에는 딱히 흥미로운 부분이 적었다. 마동석이 나온 이터널스에 이어 마블 영화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다시 한번 흔들리는 계기였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본 뮬란 또한 실사화되어 무척이나 궁금하였지만 놀랍게도 이번이 두 번째 관람이었다. 그만큼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재미가 떨어졌는데, 아마 어린 나이에 극장에서 봤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연속하여 영화 선정에 실패한 뒤로 심슨 시리즈만 정주행하다가, 어제 시내에서 극장을 지나치면서 아내로부터 <문폴>이라는 영화가 새로 개봉했음을 전해 들었다. 전형적인 재난영화인 듯하여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지만, 보러 가자는 아내의 말에 퇴근 후 곧장 극장으로 향했다. 이번 재난 영화 역시 평점은 재난이었으나, 극장을 단 둘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앞으로 살면서 강원도에서 영화를 볼 날이 얼마나 더 있을까.
영화를 마치고 마감 시간을 아슬하게 남긴 중앙시장으로 가 닭강정을 포장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닭강정을 도장 깨기하는 것의 연장이었는데 이번에 방문한 곳은 인터넷 평점이 좋았던 <속초 시장닭집>으로, 서민갑부라는 프로그램에도 출현한 이력이 있었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와 첫 한 입을 먹고는 우리 부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집이다. 약 4년 간 1위를 차지했던 <속초 닭강정>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1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록 영화는 그닥이었으나 훌륭한 닭강정을 찾은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충분히 보람차다.
슬슬 이번 여행도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처음 장을 본 먹거리도 많이 줄었다. 이제 남은 건 과자 두어 봉지와 오징어 한 마리 그리고 위스키 한 병이 전부로, 위스키는 여태 포장조차 뜯지 않았다. 사실 마시기 위해 샀다기보단 술을 바라보면 느껴지는 감정과 떠오르는 추억이 좋아서 골랐는데, 나는 술을 지독히도 못한다. 그래도 술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양을 조절한 덕에 처음 술을 접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 기억을 잃었을 뿐이다. 술은 잘 못 마셨어도 술자리의 분위기는 좋아했기에 코로나 전에는 이따금 친구와 심야식당 느낌의 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지곤 했는데, 이마저도 마시지 않으니 최근 몇 년 간은 모든 종류의 술을 합쳐 일 년에 대략 일 리터 정도 마신 것 같다. 이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데에 거창한 이름의 병명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술을 마신 뒤 느껴지는 감정을 오래도록 맘 편히 즐기지 못하는 점이 더욱 아쉽다.
최근에는 책을 읽다 위스키를 묘사한 장면이 나와 아내가 잠든 밤에 홀로 소주를 따랐으나, 소주잔으로 반 잔도 마시기 전에 냄새에 취해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옷에 흘려도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마를 정도로 살짝 마셨을 뿐인데 가뜩이나 못하는 술을 줄이니 더욱 양이 줄어든 모양인지 금방 정신이 흐려졌다. 책의 내용이 흐릿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소주는 학생 시절 소란스런 분위기 속에서 무작정 마시던 음료였고, 소주가 풍기는 향에는 다양한 기억이 어지럽게 담겨있다. 나는 그 볼썽사납기도 한 기억을 정리할 생각으로 차분히 소주를 대하며 생각을 마칠 때마다 한 모금씩 아주 천천히 마셨다. 내심 알코올이 모두 날아가기를 기다렸던 것도 같다. 차가웠던 술이 미지근해지자 조금 더 달작지근해졌는데 아마 기타 과당 혹은 그 외 감미료 때문일 것이다. 간만에 느낀 붕-뜬 기분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하루빨리 다 같이 동네 치킨집에서 한 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 홀로 사이다를 마셔도 함께 취해 떠들던 술자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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